타미야 미니카를 새로 사며. 사색

1998년 겨울 날은 아직도 꿈에 나타난다.

추디 추웠던 겨울.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무릎 꿇고 빌고있었고 가여운 엄마는 돈 5천원을 빌리러 다니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쉽던 타미야 미니카.

99년 2000년 때 타미야는 정말 고급 취미지 않을 수 없었다.

4천원이면 싸구려 샷시에 똥 모터까지 얻을수 있건만, 9천원에 샷시만 팔았던 그때의 타미야란.

그때 나는 이름 없는 브랜드에 모터 모두 합쳐 무려 6천원짜리 미니카를 가지고 있었지만, 360도 트랙을 돌기엔 힘도 모양도 빠지는 차였다.

남들은 쌩쌩도는 미니카 트랙에 홀로 돌리다 360도 를 반도 거스르지 못 하고 흘러내리는 차를 받아본적있는가.

360도를 돌아야 하는 형들에게는 성가신 꼬마였음이 분명하다.

굴리고 굴려도 속도가 나지 않아 피해야만 했던 그때의 분함.

하지만 냉혹하고 무서운 시절이었다.

찰흙을 살 200 원이 없어, 잊은척 야단 맞는것이 쉬웠던 때였다.

아이 장난감에 돈 만원도 주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망해버린 친구 아들에게 준 만원은, 아들에게 준것이 아니라 집에 보태라고 준것임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이가 그렇게 받아 모았던 만원은 '블랙모터'라는 눈이부신 존재에게 쓰는 것은 그리 어려운일은 아니었으리라.

'블랙모터'에 '비싼 충전지'에 '충전기' 까지 모았지만 나의 6천원짜리 미니카는 결국 360도를 돌지 못했고,

엄마 생각에 그 쓸데 없는것에 돈을 많이 쓴 철없는 멍청한 장남의 자동차는 압수해야만 하는 물건이었다.

이미 20년도 지나 버린 그때를 생각하면,

돌지 못하던 나의 싸구려 미니카와

또 그것을 가져가야만 했던 엄마와

속상하지만 돌려 받지 못했던 어린 내가 뒤섞여 마음이 아리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중형차도, 외체차도 일시불로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지만,

그때의 그 속상했던 마음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돌지 못하고 떨어지는 미니카를 받아야만 했던 나와,

또 그것을 가져가야만 했던 어렸던 우리 엄마.


행복하지 마.

끝도 없이 미워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런 이름이 있다.

다시 나에게 찾아와, 가장 힘든 내게서 떠나갔던 그 사람.

그 이유로 헤어질꺼라면, 다시 그럴꺼라면 시작 하지 말자던 나를, 
설득했던 그 사람.

생각해보면, 그저 외롭던 당신의 영혼을 위로할 그정도의 마음으로 나를 찾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헤어진지 2개월만에 결혼을 올렸다던 당신.

진심이었던 나의 사랑은 의미를 잃고.


아무리 생각해도 예의없던 너의 마음에, 
너의 미래에, 너의 사람에게



다시는 마주치지 말길.
마주 치는 순간 후회하게 만들것.
아니 스쳐 듣는 순간 눈물흘리게 만들것.



그것이 내가 앞으로 나아갈수 있는 힘.




유럽에서 자동차 사고가 났었다. 사색

우리의 여행 계획은 파리 CDG 공항에서 푸조리스로 빌린 푸조 파트너를 타고 32박 33일을 계획으로 유럽 여행을 다니는것이었습니다.


여행 19일차에 피렌체에서 이틀을 보낸후 피렌체 주변에 THE MALL에 방문하였습니다.

그날은 뭔가 컨디션은 좋은데 기분나쁜일들이 주변에서 한두가지씩 일어나고 있었지만, 뭐 그럴수도 있지라는 생각으로 프랑스 남부를 향해 고속도로를 올리려고 하는 찰나였습니다.


유럽내에서 보통 비보호 좌회전이 대부분이라 일단 정지, 전방확인후 출발이 이제 익숙해졌던 때였습니다.



 

(사고 장소)




 

(좌회전 하려고 일단 정지 상태)


반대편 차선이 약간 곡선에 오르막 끝자락이었는지 순간 차량이 보이지 않았는데, 급작스럽게 시야에 차량이 들어왔습니다.

정지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이미 에어백이 터지더군요. 우리차량의 속도는 5km내외였고 상대차량은 80km 이상이었습니다.


굉장히 큰 사고가 났습니다.

(반파된 우리 차량)


정신 없는 그때, 정말 여행을 통틀어 가장 감동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운전을 하던 저는 사고 후 일행걱정, 여행걱정, 차량걱정, 상대방 걱정등에 거의 멘붕 상태에 빠져있는데 지나가던 차량들이 전부 차를 멈추고 우리 일행을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앞좌석에 얼굴을 박아 붓고있던 우리 일행에게 일단 어디선가 얼음을 구해와 얼굴에 대라고 말해주더라구요.

물이 있냐고 물어보고는 멘붕에 빠진 저에게 물부터 한잔 하고 진정하라고 말해주고, 삼각대까지 달라고 해서 설치해주었습니다.

구조대와 경찰까지 직접 전화해서 불러주더군요.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사고에 대해 모두 경찰에게 전해주고 난후 명함까지 주고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고 쿨하게 갔습니다.


사고를 대충 마무리후 그날 밤에 침대에 누워서야 그 고마움이 생각났고 그리고 느꼈던 감동은 평생 잊을수 없을것 같습니다.


여튼 다친 일행은 다른 일행과 함께 엠블란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하여 검진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리고 저와 또 한명의 친구는 함께 사고를 마무리 했습니다.


일단 경찰이 오니까 사고 처리가 굉장히 쉬웠습니다.

보험사에게 제출할 서류까지 작성해서 저희에게 전해주고 차량은 주변에 있는 카센터에 렉카차를 불러서 이동시켜까지 주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도 보험처리를 받으려고 푸조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여러통 했습니다.(사고 처리 한다고 폰요금이 40만원 가까이 나왔습니다.)


이때가 가장 힘든과정이긴 했습니다.

1. 전산처리가 제대로 안되는듯 했습니다. 사고 등록만 10번정도 했습니다.

2. 렉카차 오는데 2박3일 걸렸습니다. 렉카차가 도착한 후에 센터에서 전화가 왔는데 렉카차를 어디로 보내면 되냐고 문의하는 전화였습니다.

3. 같이간 일행이 미국 생활경험이 있어서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분이 었는데, 상대방의 영어 실력이 너무 나쁩니다. 서비스 센터가 프랑스에 있어서 그런지 정말로 영어를 못합니다.

4. 2박 3일동안 차량은 주변 카센터의 주차장에 주차를 해두어 20유로를 보관료로 냈습니다.


만약에 푸조리스로 여행을 다니시다가 사고가 냈을때 가장 중요한건 푸조 서비스 센터에서 등록해주는 사고번호를 잘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그 사고번호가 모든 후처리에 기본번호 입니다. 그리고 사고때 경찰이 작성해주는 사고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주어야지 보험처리가 빨리 됩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고시 이탈리아 병원에서 검진비와 치료비는 무료입니다.

CT와 X-ray까지 찍었지만 여권번호만 받아 쓰고 무료로 해주었다고 후에 온 일행이 전해주더군요.

저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 앞좌석 두명은 에어백에 화상 정도만 났고 뒷좌석에 앉아있던 병원 간 두명도 타박상정도로 정말로 신이 지켜주지 않았다면 큰일날뻔한 사고 였습니다.


병원에서 카센터까지는 경찰들이 직접 태워까지 주는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사고시 느껴지는 이탈리아의 국민성은 정말로 선진국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사고 후 여행을 진행할수 있는 방법은 2가지가 있습니다.

1. 계약자의 신용카드(신한 VIVA 체크카드 안됩니다.)가 있으면 보증금면목으로 남은 여행기간동안 같은 크기의 차량을 렌트해줍니다.

2. 700유로의 범위 내에서 유럽내에 이동가능한 비행기표를 구해줍니다.


본인의 신용카드가 없어서 우리는 피렌체에서 2박 3일만에 차량을 보내고 로마까지 이동해서 5박 6일을 묵고 그리고 로마에서 파리 오를리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받기로 했습니다.


완전 극성수기라 아침 7시 비행기의 4장 표값이 1100유로나 하였지만 이 가격도 보험사에서 찾아준 티켓이 가장 저렴한 가격이더군요. 나머지 400유로는 푸조리스 계약시 결제되었던 신용카드에서 결제가 됩니다.


푸조리스의 극 장점이 올커버 보험이라 우리가 냈던 돈은 보관료 20유로, 사고 처리비 110유로를 경찰에게 낸것 밖에 없었습니다.







33일 달려라 유럽-1

(파리 가는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

처음 해보는 입국 심사.
크게 Hello를 외치며 심사관에게 다가갔다. 무안하게 아무 말 없이 그냥 도장 한개 쾅.

집에서 출발한지 25시간만에 난 유럽땅을 밟았다.
짐을 찾았다. 캠핑을 하려고 챙긴 짐때문에 4명의 수화물 무게가 110Kg. 짐 찾기도 쉽지가 않았다.
모든 짐을 찾고 기름으로 엉망이된 머리를 화장실에서 대충 감았다.

샤를 드골 공항의 information 센터 직원의 영어실력은 거의 원어민 급이고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우리는 푸조리스 한 우리 차가 보관중인 TT car로 가야만 했고 그곳은 셔틀카를 이용하고 있었다.
직원의 도움으로 센터에 전화를 하니 바로 앞에 셔틀카는 대기중이었고 우리뿐만 아니라 한국인 가족 한팀, 영국 가족 한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셔틀카만 탑승하면 쉽게 TT car로 갈수 있으며, 예약 확인은 간단히 여권만 있으면 됐다.

본인을 제외하고 모두들 모자이크를 했다.
이후 일정이 얼마나 힘들지는 상상도 못하고 아직 웃고있다....

차를 받으면 기름을 반드시 넣어야되고 기름을 넣어야되는 주유소는 TTcar에서 차로 3분이내에 위치해있다.

우리의 여행 계획은 돌아오기 직전에 파리 여행을 하는것이기 때문에 데카트론과 카르푸에서 쇼핑을 한후 낭시라는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데카트론은 유럽내에 아웃도어 전문 아울렛과 같은 곳이었다.
캠핑 용핑(텐트, 바람막이, 캠핑테이블, 야외 의자 등등)이 종류별로 저렴하게 판매 하고 있었다.
우리가 고른 텐트는



이런 텐트였다.

데카트론 옆에 까르푸에서 안에 설치할 일체형 테이블과 잡다한 짐을 정리할 박스 2개를 샀다.
쌀이랑 물도 샀는데 쌀은 확실히 길쭉한것이 맛이 없었다.

(첫날 짐 정리 하고 난 다음의 우리의 차.)

그리고 우리는 낭시에 예약한 Air B&B까지 3시간을 운전해 갔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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